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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who 창작발레 ‘춘향’의 강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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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048회 작성일 07-05-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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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창작발레 ‘춘향’의 강예나
“올해는 춘향의 해… 발레는 내게 이몽룡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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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성교제가 매우 자유로운 시대라 춘향이의 지조가 더욱 돋보일 수 있는 겁니다. 춘향이는 그네 타는 모습 하나로 이몽룡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섹시하지만 자신의 정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지켜 더욱 빛이 납니다.”


창작발레 ‘춘향’(5월 4~6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춘향이 역을 맡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예나(32)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조금 전 연습실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사실 그녀는 ‘까칠했다’. 오전 11시부터 ‘문훈숙의 브런치 발레’ 공연을 하고 난 뒤라 지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느낌이었다. 신체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발레리나답게 깡마른 그녀의 몸이 ‘지금은 우리가 만나기 썩 좋은 때는 아닌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 위해 소파에 앉은 강씨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년이 황진이의 해였다면 올해는 춘향이의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을 시작으로 국립발레단의 ‘사랑의 시련’,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등이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ABT(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단원생활을 한 강씨가 처음 토슈즈를 신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이때 만난 사람이 바로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문 단장은 그녀를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며 평생 멘토가 된다. 짧은 연습기간이었지만 강씨는 선화예중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1989년)는 영국 로열발레스쿨에 편입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남자 주인공이 다니던 바로 그 학교예요. 한국인으로서 처음 입학한 것이었고, 동양인이라고는 중국계 영국인을 제외하면 저 혼자였습니다.”


소녀 강예나는 영국에서의 2년을 발레 연습과 눈물로 보냈다. “말도 잘 안 통했고 아이들이 저와 놀아주지도 않아서 매일 화장실에서 울었어요. 울다가 지치면 일기도 쓰고 한국으로 편지도 썼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밤에는 화장실에만 불이 켜졌어요.”
강씨의 ‘왕눈’이 살짝 촉촉해졌고, 이제 그녀의 ‘까칠함’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영국 로열발레스쿨을 나와서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키로프발레아카데미로 진학했습니다. 미국은 영국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여러 민족이 모여 저도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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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친 강씨는 다시 이삿짐을 쌌다. 그녀는 1994년부터 2년간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에서 단원생활을 했다. “제게 러시아는 영국 이상으로 힘든 상대였습니다. 말이 안 통했고 동양인이 없었으며 겨울에는 2~3시간만 해가 떠서 무척 우울했습니다. 원래 추운 날씨를 좋아했는데 러시아 생활 뒤로는 겨울이 싫어졌어요.”


영국·미국·러시아 등 계속 객지생활을 한 강씨는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와 유니버설발레단의 최연소 수석무용수가 됐다. 하지만 세계의 발레 명인들이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결국 1998년 케빈 매킨지가 이끄는 ABT에 들어갔다. 입단과 동시에 ‘돈키호테’의 ‘플라워 걸(flower girl)’ 역을 맡았다. 하지만 그녀 인생 최대의 위기가 그림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연습을 하다가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왼쪽 다리로 착지하는 순간, 무릎의 근육이 찢어지고 십자인대가 파열됐어요. 5시간 동안 수술하고 9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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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목발에 의존해야 하는 발레리나는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술감독 케빈 매킨지는 1년 이상 강씨의 회복을 기다려줬다. “이전에 연습이 힘들게 느껴질 때는 발레를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종종 ‘발레리나로 사는 것이 정말 좋은가’라고 의심도 들었지만 막상 부상을 당하고 나니까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정말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회복을 기다리던 그녀는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부재(不在)라는 단어가 존재의 의미를 더욱 크게 느끼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꽃망울이 터지기도 전에 된서리를 맞은 ABT ‘플라워 걸’에게 봄은 다시 찾아왔고, 강씨는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하게 됐다. 그리고 2003년에는 ‘플라워 걸’ 배역이 그녀에게 다시 주어졌다. 5년 전에도 맡았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손끝에서 놓쳐 버린 배역이었다. 기뻤다. 하지만 오랜 외국 생활과 부상으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맛본 그녀에게는 ‘산 정상에서 내려와야 할 때’라는 신호로도 감지됐다. “이제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고 느꼈습니다. 꽃이 환하게 피어버렸으니까요.”

 

강씨는 2004년 이삿짐을 쌌고,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품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양 작품의 배역을 주로 맡았지만 2007년 5월엔 진정한 춘향이가 되려 한다. “발레는 제게 그야말로 이몽룡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줬지만 간혹 아픔도 줬고,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미워했고, 저를 외롭게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춘향이처럼 발레에 대한 정조를 지켰습니다. 앞으로 제가 발레를 그만둘 수 있다면 그건 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을 때일 겁니다.”

모든 공연을 항상 첫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강씨에게는 신인들처럼 아직도 무대공포증이 있다. 특히 중요한 공연 전날 밤엔 꼭 악몽을 꾼다. “화장을 반밖에 못했는데 막이 올라가고 오케스트라 음악은 제가 처음 듣는 곡이고, 저만 다른 사람들의 안무와 전혀 맞질 않아요. 깨고 보면 꿈입니다.”

그래도 이번 ‘춘향’ 공연에서는 이몽룡 역을 맡은 이현준씨 덕분에 조금 안심이 된다. 이씨는 강씨의 외사촌동생이다. “명절 때마다 만나던 현준이는 어릴 적부터 가수 백댄서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근사한 발레리노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몽룡 역을 맡아 저와 무대 위에서 파드듀(2인무)를 추며 사랑을 나누게 됐네요.”


 

강씨는 현재 어머니(이현자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 언니(외국계 회사 근무)와 살고 있다. “언니와 함께 있으면 남자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꼭 책을 읽습니다. 코엘류 작품은 모두 읽었고,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는 항상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무심는사람)를 다시 읽죠.”

강씨가 독서를 많이 하려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인 발레리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발레는 공간이라는 캔버스에 몸이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부와 연습을 많이 해야만 좀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레리나에게는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간이 한정돼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한국 발레영화가 나오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


 


/ 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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